
코스피가 7,000선 부근까지 올라온 9월 말, 대신증권은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을 5.49배로 계산하며 ‘역사적 저점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2001년 이후 평균이 약 9.5배이니 절반 수준입니다. 지수는 연초보다 크게 올랐는데 PER은 오히려 절반으로 내려왔습니다. 주가(P)보다 이익 전망(E)이 더 빨리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PER 5배인 한국 시장은 싼 걸까요. PER이 3배, 4배인 종목은 사 두면 오르는 걸까요. 이 블로그에서 종목의 숫자를 뜯어보면서 가장 자주 마주친 질문이 이것이었습니다. 이 글은 PER·PBR·PSR의 뜻을 한 번에 정리하고, 낮은 PER이 함정이 되는 7가지 경우를 이 블로그에서 실제로 다룬 종목들로 설명한 기록입니다. 각 사례의 링크를 따라가면 해당 종목의 전체 분석을 볼 수 있습니다.
01PER·PBR·PSR — 세 줄 요약
세 지표는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PBR은 PER에 자기자본이익률(ROE)을 곱한 값과 같습니다(PBR = PER × ROE). 예를 들어 시가총액 1조 원, 순이익 1,000억 원, 자본총계 5,000억 원인 회사는 PER 10배, ROE 20%, PBR 2배입니다. 이 관계가 뒤에서 보는 ‘저PBR의 함정’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02착시 ① 같은 시장, 두 배 다른 PER — 어떤 이익을 넣었나
PER에서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분모의 이익(E)이 ‘지난 이익’인지 ‘앞으로의 이익’인지입니다. MSCI Korea 지수의 8월 말 PER은 지난 12개월 이익 기준(후행)으로 10.17배, 앞으로 12개월 전망 기준(선행)으로 5.06배였습니다. 같은 시장, 같은 날짜인데 두 배 차이입니다. 한국거래소가 1월 중순 발표한 코스피 PER은 19.31배였는데, 같은 시기 선행 PER은 10배 안팎이었습니다.
개별 종목에서는 차이가 더 극적입니다. 2025년 실적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PER은 각각 45배, 33배였지만 12개월 선행 PER은 6배, 5.2배였습니다(딜사이트, 5월). 최근 이 블로그에서 다룬 LG전자 편도 같은 경우입니다. 적자였던 지난해 4분기가 들어간 후행 PER은 약 37배, 증권사 전망 이익을 쓴 선행 PER은 약 17배로 계산됩니다. ‘PER 몇 배’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어떤 이익 기준으로?’를 물어야 합니다.
03착시 ② 이익이 정점일 때 PER은 가장 낮습니다
코스피 선행 PER이 5배대로 내려온 이유는 주로 반도체입니다. 5월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가 코스피 시가총액의 48%, 순이익 전망의 72%를 차지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가격이 오르면 이익이 폭발적으로 늘고, 가격이 꺾이면 빠르게 줄어드는 사이클 산업입니다. 이런 업종은 이익이 정점에 가까울수록 PER이 가장 낮아 보입니다. 투자교육 자료들이 경기민감주에 대해 ‘고PER에 사서 저PER에 팔라’는 격언을 소개하는 이유입니다.
간단한 계산 하나가 이 점을 보여 줍니다. MSCI Korea의 8월 말 주가순자산비율(2.26배)을 선행 PER(5.06배)로 나누면 약 0.45, 즉 시장 전체가 앞으로 1년 동안 현재 자기자본의 약 45%를 이익으로 번다는 가정이 가격에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선행 이익과 현재 자본을 섞은 단순 계산). 이 가정이 맞으면 PER 5배는 싼 것이고, 메모리 가격이 꺾여 이익 전망이 내려가면 같은 주가에서 PER이 순식간에 두세 배로 뛸 수 있습니다. 실제로 딜사이트는 5월에 두 회사의 PBR이 4배를 넘어 과거 메모리 업황 피크 구간과 비슷하다고 짚었습니다.
반대 방향의 사례도 있습니다. 불황기의 경기민감주는 이익이 작거나 적자라서 PER이 매우 높거나 계산되지 않습니다. 4년 연속 영업적자를 내다 두 분기 연속 흑자로 돌아선 롯데케미칼 편이 그렇습니다. 사이클의 바닥에서는 PER이 ‘비싸 보이는’ 것이 정상입니다. 반도체 호황의 숫자는 SK하이닉스 편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04착시 ③ 일회성 이익이 PER을 끌어내립니다
PER의 분모인 순이익에는 영업과 무관한 이익이 섞일 수 있습니다. 보유 지분의 평가이익, 자산 매각이익, 환율 이익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이익은 순이익을 부풀려 PER을 낮춰 보이게 하지만, 다음 해에 반복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순이익과 영업이익을 나란히 놓고, 순이익이 영업이익보다 훨씬 크면 그 차이가 어디서 왔는지 먼저 찾아야 합니다. 보험사처럼 이익 구조가 복잡한 업종에서는 현대해상 편에서 다룬 것처럼 ‘PER 3.4배’라는 숫자만으로 저평가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05착시 ④ 적자 기업에는 PER이 없고, PSR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적자 회사는 순이익이 마이너스라 PER이 의미가 없습니다. 이때 시장은 매출 대비 가격(PSR)이나 순자산 대비 가격(PBR)을 봅니다. 문제는 성장 기대가 큰 종목일수록 이 배수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올라간다는 점입니다.
레인보우로보틱스 편에서 계산한 PSR 188배는 ‘지금 매출이 그대로라면 시가총액을 매출로 채우는 데 188년이 걸린다’는 뜻이고, 그 차이는 전부 미래에 대한 기대입니다. 마키나락스 편에서는 매출 115억 원 회사에 5,291억 원의 시가총액이 붙은 경우를, 두산퓨얼셀 편에서는 적자 회사에 높은 PBR이 붙은 경우를 다뤘습니다. 이런 종목에서 봐야 할 것은 배수 자체보다 매출 성장률, 적자 폭이 줄어드는 속도, 그리고 현금이 얼마나 버티는지입니다.
06착시 ⑤ PBR 1배 미만 — 싸서 낮은가, 이유가 있어 낮은가
‘PBR 1배 미만이면 회사를 청산해도 주가보다 많이 돌려받는다’는 설명을 흔히 듣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본 공식(PBR = PER × ROE)을 떠올리면, 자본 대비 이익(ROE)이 낮은 회사는 PBR이 낮은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자산이 이익을 내지 못한다면 그 자산에 장부가만큼의 가격을 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5월 기준 코스피 종목의 64.7%가 PBR 1배 미만이었습니다.
반대로 ROE가 오르면 PBR도 오릅니다. 2026년 2월 KB금융은 은행지주 가운데 처음으로 PBR 1배를 넘었고, 증권업종 평균 PBR은 두 달 사이 0.64배에서 1.17배로 올랐습니다. 이익 체력이 좋아지고 주주환원이 늘어난 결과입니다. 저PBR 종목에서 확인할 것은 ‘지금 싼가’보다 ‘ROE가 올라갈 이유가 있는가’입니다.
07착시 ⑥ 같은 업종인데 PER이 세 배 — 비교의 함정
‘동종 업체보다 PER이 낮으니 싸다’는 비교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번에 분석한 코웨이와 쿠쿠홈시스는 같은 렌탈 업종이고 분기 영업이익률도 17.6%와 16.9%로 비슷하지만, PER은 약 10.5배와 3.9배입니다. 규모, 해외 성장률, 유동성, 주주 구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KT&G의 선행 PER(약 13배)은 필립모리스(22배)의 절반 수준이지만, 필립모리스는 이익의 90% 이상을 배당하고 KT&G의 배당성향은 44% 수준입니다.
비교하려면 PER과 함께 성장률, 이익의 질, 배당성향, 지배구조를 같이 놓아야 합니다. PER이 낮은 쪽이 싼 것이 아니라, 시장이 그 차이만큼 무언가를 걱정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08착시 ⑦ 분모의 주식 수가 바뀝니다 — 소각과 증자
PER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누므로, 회사 전체 이익이 같아도 주식 수가 바뀌면 PER이 달라집니다. KT&G 편에서 본 것처럼 발행주식의 22.4%를 소각하면, 같은 순이익에 주당순이익은 약 29% 커지고(1 ÷ 0.776, 계산) 주가가 그대로라면 PER은 그만큼 낮아집니다. 반대로 유상증자나 전환사채 전환으로 주식 수가 늘면 주당순이익이 희석됩니다. SK디앤디 편에서는 새로 찍는 주식이 기존 주식 수의 2.4배인 경우를 다뤘고, 유상증자의 호재·악재 판단 기준은 유상증자 편에 정리했습니다.
09PER을 보기 전에 던질 일곱 가지 질문
PER은 좋은 출발점이지만 결론은 아닙니다. 코스피 PER 5배라는 숫자도, 한국 기업이 정말 싸다는 뜻일 수도 있고 반도체 이익 전망이 너무 높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인지는 PER이 아니라 E, 즉 이익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달려 있습니다. 이 블로그의 종목 분석이 매번 ‘이익이 어디서 왔는가’를 먼저 따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